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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ose/1st Tree

2005.12.10 (39w1d) 딸아이 태어나다

오전 1시.

6-7분대로 떨어짐. 강도가 꽤 센데다가 지속시간도 1분으로 길어져서 이제 진통할 땐 말도 나온다. 
시간 체크 하느라 수첩에 진통간격 체크하는데 손이 벌벌 떨린다.
병원에 전화를 해봤다. 진통 지속 시간이 1분이 넘는데 진통 간격은 6-7분대다..
라고 했더니 5분 미만일 때 오라는 말만 한다.
원래 5분 간격이 되면 병원에 가야지 하고 맘먹고 있었던 터라 3시까지 기다려 보기로 했다.


오전 2시.

확실히 5-6분대. 2분, 3분 간격으로도 진통이 온다.
진통 세기도 무시 못할만큼 강해져서 끙끙대기까지 했다.
진짜 병원에 가야겠다고 생각은 하지만 평균으로는 5분대로 떨어지지 않았다.


오전 2시 45분.

참다참다 못해서 아, 이제 가야하나 싶었는데
갑자기 퍽 하는 느낌과 함께 뜨뜻한 물이 가랑이 사이에 물컵이 엎어지듯 흘렀다.

양수다.

다 죽어가는 내 목소리.

"폴..... 양수 터졌나봐..."

"어!! 지금 가야겠네.. 괜찮아? 지금 가야되지?"

폴이 어머님을 깨우러 건너간 동안 침대에서 일어나는데
다시 주르륵 흘러내리는 양수.
서둘러야겠다는 생각과 이제 전쟁이다 라는 생각과...
오만가지 생각 다 들면서.. 힘은 힘대로 들고..


오전 3시 15분.

아주버님 차 타고 병원 도착.
간단한 확인 및 문진후 곧바로 분만대기실로 입장.
TV에서만 보던 어둑한 방. 침대에, 도플러에..

환자복으로 갈아입는 동안 조산사가 들어와서
아기 낳을 때 까지 몇시간 더 걸리니 신랑 외 가족은 집에 갔다가 나중에 다시 오래서
시어머니와 아주버님 귀가..

간호사 하나가 들어와 제모하고 관장을 한다.
관장한거 참다참다 화장실 한번 다녀와 주고, 항생제가 든 링겔 꽂고
 폴과 나 둘이 어둑한 대기실에 있는데 조산사가 하나 들어와서 호흡법을 알려준다.
처음엔 코로 들이마시고 입으로 길게 내뱉으라고 한다.
진통이 올 때 팔에 힘 절대 주지 말라고 하는데 이거 참 어려웠다.
잠시 후 내진을 했는데.. 10% 열렸다고.. 이렇게 아픈데.. 겨우 10% 란다.


오전 4시.

아파서 끙끙 소리를 넘어선 신음 소리가 절로 나온다.
그러면서도 피곤하고 졸려서 진통 없는 동안은 졸다가 진통이 오면 괴로워 하다가...
조산사가 알려준 호흡법을 지키기가 너무 어렵다.
아아아~~ 소리가 절로 나오는데 폴은 자꾸 호흡법 대로 하자고 나를 달래고
가끔 나무에게도 태담을 하며 달래준다.
애써 호흡을 하다보니 입모양과 호흡은 그런대로 겨우 따라하고 있는데
신음 소리가 섞이니.. 우우우우우~~~~ 완전 짐승 소리다. ㅡ.ㅡ


오전 5시.

눈을 뜰 수가 없다. 어둑한 조명으로 눈에 부담이 되진 않았지만
지쳐서 조금이라도 자고 싶은 생각 그리고 너무 고통스러워 눈을 뜰 수 없었다.
폴은 자꾸 눈 뜨라고 하고.. 그동안 내진 다녀감.. 30% 진행 되었단다.
진통 간격은 2분 미만.  이젠 몸무림을 칠 정도로 진통이 고통스러워 침대 난간을 붙잡고 사경을 해매야 했다.
폴이 마사지도 해주고, 주물러도 주지만.. 어디를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 내가 해달라는 것만 해줄 뿐이었다.
가끔 폴이 물마시러, 화장실 다녀오러 나간 사이에 진통이 오면
너무너무 무서워서 나무에게 말을 걸며 엄마에게 힘을 달라고,
얼른 태어나서 엄마랑 만나자고 몇번이고 말을 했다.


오전 6시.

지치고, 고통스럽고.. 진통 간격은 1분 미만..
이제 계속 아프다고 해야 할 정도. 이따금 나무가 뱃속에서 밀어내기를 한다.
밀어낸다고 얘기하니 힘을 같이 주면 분만이 빠르다며, 힘주는 법을 알려준다.
처음엔 5번에 1번 꼴이었는데 밀어내기를 하는 나무가 무서웠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폴이 힘 들어갈 때마다 자기 목덜미를 안고 힘을 주라며 힘주기를 같이 한다.  
나중에 5번중 2번, 3번.. 빈도가 더해지면서 힘 들어갈 동안은 너무너무너무 힘든데, 
힘 들어간 후에 풀어지는 동안은 나무가 고마울 정도로 진통이 좀 덜해지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건 그 때 뿐이고...
내진을 하던 간호부장님 말씀이 거의 다 되었으니 똥마려운 느낌이 들면 얘기하란다.
이제 거의 다 되었구나 라고 생각했는데 6시 반이 지나서 였던가..
똥마려운 느낌이 들어서 폴이 나가 간호사를 불렀는데 아무도 다녀가질 않는다. ㅠ.ㅠ


오전 7시.

여의사 선생님이 내진. 이제 분만실 가자고 하신다.
15분 쯤 후 분만실로 휠체어를 타고 가는데 엉덩이가 눌려 나무가 다시 쏙 들어가 버릴까봐
한쪽으로 기울어 앉았더니 난간에 부딪힌다고 똑바로 앉으란다. ㅠ.ㅠ

분만대에 오름.
아기 배냇저고리와 Real Group의 캐롤 CD를 내주라고 폴에게 말했다. (할 건 다 했지..)
다시한번 내진. 조금 기다렸다 곧바로 낳자며 약 5분 정도를 다시 혼자 진통하게 한다.
분만대가 잠시동안 침대 모드로 바뀌었고, 이땐 폴도 들어오지 않았고 조산사도 잘 달래주기만 하다가 나갔다.

Real Group의 노래가 들리고.. 그나마 이게 그 두려운 시간에 위안이 되었던 것 같다.

의사 선생님이 들어오시고, 이제 아기를 만나자며 본격적인 힘주기에 돌입.
몇 번 힘을 주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힘주다 보니 머리가 보인다고..
조금 후엔 머리의 1/3이 보인다고.. 그러다 머리 다 나왔다고..
그러고선 물컹한 것이 쑥 빠지는 느낌이 들면서 진통이 씻은듯 사라지고.. 


오전 7시 43분.



오전 7시 43분. 여아입니다.. 라는 간호사의 목소리..
음악 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


그 와중에 브이질.



태지를 대강 닦은 나무가 내 가슴에 얹어졌다. 


따뜻하고 묵직한 무언가가 환자복을 통해 피부에 느껴졌고
조금 울듯말듯하던 나무가 내 목소리를 듣고 조용해진다.


눈도 뜨고..


참 신기했다. 신기하니 눈물 날 겨를도 없더라.
안경 벗은 채 출산했으니 나무 얼굴 제대로 못볼 것 같았는데 어찌나 또렷이 잘 보이던지..


폴은 열심히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고, (언제 탯줄을 잘랐는지도 모르겠다)
3.2kg 이라는 목소리, 그리고 아기가 또 울다가 이번엔 폴의 목소리를 듣더니 조용해지더라는..


주사 한번 더 맞고 태반 빠지고 회음부 꿰매고..
맨 나주에 따뜻한 물수건으로 간호사가 내 엉덩이를 닦아주는데
싸늘한 분만실에 그 따뜻한 물수건이 어찌나 고맙던지.



오전 8시.

조금의 시간이 지난 후 난 다시 휠체어를 타고 분만 대기실로 돌아갔다.
1-2시간 있다가 입원실로 옮길거라며 9시에 입원 수속을 하란다.
분만실 들어갈 때 폴이 양가 어머니들께 연락해서 오여사님, 시어머니, 아주버님이 대기실로 들어오셨다.
위로 한사발 들어주시고. 미역국 한 사발 들이켰다. 정말정말 맛있는 미역국이었다.


오전 9시.

폴이 입원수속을 하고 들어왔다.
1인실 중에 가장 싼 방을 잡으라고 했더니, 그 병실이 오늘 10시 반쯤에 비워진다며 그때까지 분만대기실에서 대기해야 한대나..
가족들은 나무 보러 신생아실로 가고, 폴과 나는 그 동안이라도 잠을 자기로 했다.


오전 10시.

잠결에 들리는 다른 산모들의 신음소리, 가족들, 신랑들의 웅성거리는 소리.
이따금 들어오는 응급차 소리.. 산모를 옮기는 구급요원들 소리...
그러면서도 잠깐 동안은 잠들었던 것 같다. 폴사마.. 여느때보다 요란하게 코를 골았다.


오전 11시.

병실이 준비되었다는 기별이 와서 병실을 옮겼다.
옮기자마자 짐 정리 하고 입원에 대한 설명을 듣고, 곧바로 모자동실을 신청했다.


낮 12시.

신생아실에서 내일 아침에 모유수유 교육을 한 뒤 아기를 내주겠다고 기별이 왔다.
그럼 오늘은 아기에게 뭘 먹일거냐고 했더니 태어나자마자 포도당을 주었고, 오후에 분유를 조금 먹일거라고 한다.
상당히 불쾌했다. 모유수유를 권장하는 병원이라는게 이런건가 싶어서 실망했었는데
운좋게 내 병실 바로 옆방이 모유수유 상담실이어서
모유수유 전문가이자 이 병원 수간호사인 분이 바로 해결해 주셔서 곧바로 아기를 받을 수 있었다.


오후 2시.

젖을 먹여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 옆방 모유수유 상담실에 찾아갔다.
젖먹이는 자세와 기본적인 것은 이미 이 병원의 모유수유 강좌를 통해 알고 있었지만
직접 젖을 물려야 해서 일단은 찾아간 것이었다.
모유수유 강좌를 하셨던 분이 계셔서 도움을 요청했고, 어렵지 않게 젖을 물릴 수 있었다.




출산한 당일 아기에게 젖먹이겠다고 모유수유 상담실까지 쫒아다니다니..
나도 참 극성스러운 엄마가 되려나보다.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