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Rose/1st Tree

2005.12.09 (38w7d) 이슬과 진통

새벽 5시 반쯤에 배가 싸르르 하며 잠이 깼는데 소변만 보고 다시 걍 잤다.


오전 7시 23분.

잠이 다시 깼는데 여전히 배가 묵직하니 싸르르 아프구 응가도 생각나고 해서 화장실에 갔더니...
이이뿐 색깔로 이슬이.. ㅋㅋ
이거땜에 이번주 내내 소화도 안되고 조금만 먹어도 배가 더부룩 하고 그랬나 보다.
지금 막.. 후회 되는 것이...
VIPS 벙개 기어코 가서 보신 해야 했는데.. 하는거.. 어흑어흑.

하루 꼴딱 밤새고 자정 넘어 들어와 곤히 자는 폴을 깨워서 이슬봤다고 자랑했더니만..
폴씨, 첨엔 걱정된다며 뒤척이다가, 아직 멀었으니 더 자란 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덕담 한두마디 나무에게 날리더니 다시 코골고 잔다. ㅡ.ㅡ

진뚱에게 문자 보내고 통화했다. 오여사님한테는 나중에 진통 오면 알리기로 했다.


오전 8시.

육아카페에서 배운 대로, 샤워하구 머리도 감구.
배가 넘 고파서 주방에서 반찬을 챙기자니 폴사마 코고는 소리 주방까지 들린닥.
돼지고기를 먹어야 한다던데, 냉장고에 삼겹살까지 있었는데..
난 평소 입맛대로 고기가 안땡긴다. 글구 아침에 왠 고기...
김치찌게와 장조림과 물김치, 김만으로도 맛나게 와구와구 잘 잡숴주셨다.


오전 9시 15분.

생리통처럼 진통이 사알짝 오는둥 마는둥 하는데 시간이 들쑥날쑥..
5분간격이다가 11분 간격이다가... 
시간 체크는 계속 할거지만 가진통이라 조금 김빠짐..
그래도 짐이나 챙겨야지. 폴님은 여전히 침대 위에서 뒤척이며 잔다.
엊그제 고생 했으니 봐줬다. 안그랬으면 마누라 진통하려는데 편히 잔다고 구박했겠지만...
근데 자는 모습이 원래 이쁜 우리 폴을 보노라니
 화악 달겨들어 뽀뽀에 부비부비(평소에 우리 부부 맨날 이러고 논다. 애같다. ㅡ.ㅡ) 해주고 싶은데
진통을 핑계로 참았다.


오전 10시.

아직도 진통은 오락가락 들쑥날쑥.
빨래 넣고 설거지 하고 짐 다시 정리해서 다 끝내놓고. 메일도 확인하고..
폴은 아직까지 자는데 코는 안곤다.
더 자고는 싶은데 내가 들락거리지, 날이 이미 밝아버려서 깊이 잠들지 못하는 모양.


오전 11시 30분.

폴님 자리에서 기침 하셔서 거사 치르러 화장실 들어가시고, 나는 마침 오늘이 정기검진이라 병원에 갔다.
태동검사를 하니 10분에 한번 꼴로 배가 뭉치면서 아랫배가 아프다.
샘님 내진하더니 자궁이 열리기 시작했다고만 하시는데 자궁 몇센치 열렸는지 말씀 안하심.
물어보니깐 손꾸락 하나 라고만 .. 그리고 죽을만큼 아프면 병원에 오라는..

오여사님이랑 어머님께 연락드렸다.


오후 1시.

10-15분 사이 진통이 오는데 진진통인지도 모르겠고..
안아프면 멀쩡하니 일단 장을 보기로 했다. 겸사겸사 운동도 되니깐.. 
폴 불러다 집앞 마트에서 장을 봤다. 장보는 동안 두어번 아픔..
스트레스성 지르기였던가, 오랜만에 99 크러스터 4천원짜리 한통, 떡볶이 질러 주시고..


오후 2시.

떡볶이 1인분 해치우고.. 폴이랑 99 아이스크림도 반통 해치우고..
우리 부부는 뭔가 맛난 거 있으면 거의 눈 뒤집어 까고 퍼먹는다.
원래 먹는 속도가 빠른 데다.. 욕심도 대따 많아서.. 생각만 반통이고 먹다 보니 1/3통 남았다. 
폴님 회사일로 또 전화가 오고 나는 아싸~를 외치며 몇숟갈 더 퍼먹다 밥숟갈 들고 인상 한번 빡 써주고, 
그 찰나 오여사님 전화가 걸려와 잔소리 한바탕 들어주시고..


오후 3시.

진통간격 10분대 미만으로 진입. 하지만 여전히 불규칙.
정뚱에게 전화 옴. "언니! 목소리가 왜 이렇게 씩씩해?"라는 핀잔을 들음. ㅡ.ㅡ 

폴님 회사에서 뭔가가 문제 있는지 전화가 주구장창 들어오기 시작.
우이씨.. 전에 우리 아파트 불나서 대피할 때에도 그러더니.. 써글 쓰리스타 회사가 도움을 안주네.


오후 4시.

아.. 진통의 세기가 세졌다. 9분 10분 9분 10분 이런다 막.
인제 아프면 하던 동작 올스톱 하고 걷지도 못하고 꼼짝 없이 30초를 그러고 있어야 한다.
그러는 와중에서도 폴이랑 키득거리며 육아 카페에 들어가 분만기를 보면서 귤 까먹었다.


오후 5시.

진통 간격이 다시 불규칙해짐. 10분 안팎으로 계속 주기가 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폴이랑 분만기도 읽고 나머지 태교동화도 읽어주고 임신출산 정보 책 나머지도 공부했다.
하여간, 아가가 굵고 낮은 남자 목소리를 더 잘듣고 좋아한다고 말했던 뒤로
이렇게 지극정성으로 태교동화 읽어주는 폴사마..
게다가 본인이 원하던 딸이라니 이러다 내가 소외받게 생겼다.


오후 6시.

시어머니가 퇴근하셨다. 저녁을 챙기기 시작하시길래 도와드리려고 주방에서 서성댔지만
진통할 때 아파하는거 보시면 걱정하실 까봐 아플 때 쯤 되면 방에 들어가 인상 빡빡 쓰다가 태연히 나왔는데, 일이 손에 안잡히고..
건조대에서 마른 빨래를 걷어다가 갰다. 진통이 오니깐 큰 빨래 개기도 귀찮다. 큰 빨래는 폴 시키고..


오후 7시.

성탄을 맞아 성탄절 전까지 성당에 가서 판공성사를 봐야 한다.
원래 지난 주말에 보려고 했는데 이래저래 못했고, 이젠 아기 낳게 되면 영엉 기회를 놓치기 땜에
오늘 견딜만 할 때 가는게 차라리 낫겠다 싶어 성당에 가서 판공성사를 보고 왔다.
그것도 택시를 아닌 버스를 타고. 우리 부부는 참 엄하게 돈 아낀다. ㅡ.ㅡ


오후 8시.

여전히 폴은 회사 업무로 전화를 받고 전화를 하고..
써글 것들이 도데체 간만에 쉬는 우리 빵군을 놔주질 않는다.
이쁜 색시 진통하는거 돌보기도 바쁘단 말이다. 이 써글 것들아.

게다가 시어머니도 한마디 하셨다.

"닭띠니깐 애기 아침에 낳아라~ 닭띠는 밤에 낳는거 아니다." 

ㅠ.ㅠ


오후 9시.

아주버님께 카메라를 빌려 달라 부탁을 해둔 터라 아주버님이 집에 들르셨다.
우리가 쓰는 똑딱이 Canon A85로는 도저히 르봐이에 분만을 하는 어둑한 곳에서
우리 소윤이 첫 모습을 제대로 찍기가 어렵기 때문이었다. 
확실히 큼직한 시꺼먼 카메라는 뭔가 달라도 달랐다.
테스트를 위해 방 불을 끄고 책상 스텐드만 켠 채 찍어봤는데~
찰칵 찍히는 소리가 수동 필름카메라처럼 샥샥 감기는게 넘 좋다. 흐흐..
(산모가 출산 앞두고 진통하면서 기계 좋은거 보고 므흣해 하고 막 이래)


오후 10시.

진통 간격이 10분 안팎이다. 
하지만 언제 병원에 갈지 아직도 감이 잡히질 않고... 진통 길이와 세기만 더해질 뿐이다.
언제 병원에 갈 지 모르니 물도 못마시고.. 먹을것도 못먹고..

콜택시를 이용하겠다고 이미 말씀드렸는데
아주버님이 직접 병원에 데려다 주시기로 하고 일단 흑석동 집에 가셨고,
식구들 모두 잠을 자두기로 했다. 


오후 11시.

진통 때문에 쉽게 잠들지를 못하고 시간만 재고 있었다.
4분, 5분 간격이 되다가 다시 10분 간격이 되고..
점점 기다리는 시간이 지겨워지기 시작.

배가 고파졌다. 진통 정도로 봐선 음식 먹기가 좀 그랬는데 그래도 뭔가를 먹고 자둬야 겠다 싶어서 스프를 끓였다. 
허기만 면하는 정도로 부담없이 먹으려고 한건데
시어머니께서 너무 묽다며 가루를 더 넣으라고 하셔서 결국 짭짤한 수프를...
흑흑. 이건 죽이 아니란 말이에요... ㅠ.ㅠ


자정.

잠깐 잠들었던 폴이 결국 일어나서 마눌과 얘기도 하고 주물러 주기도 한다.
간격이 9분대에서 떨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