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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ose/1st Tree

2005.11.28 (37w3d) 우리 아파트, 내가 사는 동에 불이 났다.

저녁에 욕실에서 양치하고 있는데 쿵~ 우당탕.. 하길래
윗층 어느 집에선가 뭔가 물건이 떨어졌거나 사람이 넘어진거라 생각했다.
(늘상 그랬었으니까)

현관쪽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고함소리가 들리길래
아까 그 소리가 날 때 누군가가 다쳤는가보다 싶어 현관문을 열고 내다보니
불이 났다고 소리치며 사람들이 계단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퐇은 약 15분쯤 전부터 회사일에 문제가 생겨 계속 관계자들과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불이났다는 말에 상당히 스트레스를 받는 모양이었다. 

급히 옷을 챙겨입고 전화기만 든채 1층 로비를 통해 뒷동으로 대피했는데
위로 올려다 보니 같은 동 1105호에서 시커먼 연기가 치솟고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안방쪽에서 불이 시작된거라
앞동쪽에서는 불꽃이 적나라하게 치솟는 광경이 보였다 한다.

불길은 30분만에 잡혔지만
잔불끄는 작업과 연기가 가시지 않아 긴장하여 잔뜩 뭉친 배를 부여잡고
1시간 가량을 밖에서 떨다 집으로 다시 들어왔고,
입주자 대표회의의 우리동 동장이신 시어머니는
새벽 2시까지 관리사무소에 경찰서 형사들에 시달리다 들어오셨다.

불이 나던 시각에 시어머님은 서명받을 일이 있어서
우리집 라인(3-4호 라인) 반장님과 함께 화재가 났던 바로 그 5-6호 라인에 서명을 받고 계셨는데
불이 났던 1105호는 초인종을 눌러도 기척이 없어 아무도 없는 줄 아셨고,
상층부터 서명을 받으며 내려와서 3층에 있는 5-6호 라인 반장님과 약간의 담소를 하시던 중에 폭발음을 들으셨고
뒤이어 위층에서 대피하느라 뛰어 내려오던 사람들로부터 불이 났다는 것을 아셨다고 한다.

나중에 이런저런 경로로 알게된 것이지만,
사고 현장에 50대 남녀가 나란히 침대에 누운채 시체로 발견되었는데,
탈출의 의지가 전혀 보이지 않은 걸로 보아 타살후 방화이거나,
둘중 하나 또는 둘 모두 자살 의도로 방화했을 경우가 다분한 것으로 잠정 결론이 났다 한다.
어머님 말씀으로는 해당 세대 거주자가 50대 여자만 등재 되어 있어 50대 남자 신분만 밝혀지지 않아 경찰이 수사중이라고 한다.

임신출신출산정보 카페에 같은 동네 사는 주미 엄마의 사촌 오빠가 1204호엔가에 살고 있는데 
양 옆세대의 탈출벽을 뚫고 1104호의 안방 커튼과 1106호 약간만을 태우고 바로 꺼졌다고 하니
주미 엄마의 사촌오빠 가족은 별 피해를 보지 않은 모양이고,
1104의 윗층 두 세대 1204호와 1304호는 연기와 그을음 때문에 집이 엉망이 되어
부녀회에서 오늘 청소를 해준 모양이다.

아파트 동호회 게시판을 보니 억울하게 피해를 당한 몇 세대에 대한 내용들이 참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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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망히 밖으로 대피하면서, 무엇을 챙겨 나가야 하나 허둥대드라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단지, 우리 아기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만..
잠깐 결혼예물 반지가 생각났다. 그나마 돈이 되니까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암튼 순간적으로 모든 걸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눈앞이 캄캄할 뿐이었다.

물론 그 생각은 일단 밖에 나가서 같은 동임에도 불구 우리집으로 부터 다섯 층이나 윗집인,
그리고 1개 라인 건너에 있는 집에서 화재가 불생한 걸 보고 다 까먹어 버렸긴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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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소식을 들은 건지 MBC와 KBS 취재진이 닥쳤는데
동 입주자회 임원 분들이 온몸으로 막으셨다고 한다.
입주 1년도 안된 아파트의 사고 소식은 집값 하락에 치명적인 요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MBC는 정말 개같이 찍어서 자정 뉴스로 보도하였고(이미 불길이 잡혀 시커먼 집안만..)
KBS는 영상은 못찍었지만 인터넷으로 서너줄 올려놓았으며
다음날 아침엔 YTN에 누군가가 동영상을 찍어 제보하는 바람에 불길이 아주 멋드러진 영상을 볼 수 있었다...